
의학 분야 국제 학술지 ‘란셋(The Lancet)’에 한국 의료의 위기 상황을 진단하는 기고문이 실렸다.
윤주흥 미국 피츠버그의대 교수와 박형욱 단국의대 교수, 권인호 동아의대 교수는 현지 시각으로 지난 15일 란셋에 ‘위기의 한국 의료(The South Korean health-care system in crisis)’라는 제목의 기고문을 게재했다.
저자들은 기고문에서 “한국 의료는 매우 낮은 보험부담금과 낮은 문턱으로 선진국들보다 훨씬 낮은 예방 가능한 사망률과 높은 의료서비스 접근성을 자랑해 왔고, 이는 다른 여러 나라의 모범이 되어왔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지난 2월 대한민국 정부가 2025년부터 의대생을 2,000명 늘려 전체 의사 정원을 67%나 증가시킨다는 일방적인 발표를 하면서 약 90%의 전공의들이 수련병원에서 뛰쳐나갔고, 한국의 의학교육 시스템과 의료서비스 전체가 멈추는 초유의 사태가 일어나게 되었다”라고 밝혔다.
주목할 점은 전공의들이 병원을 뛰쳐나간 이유가 단순히 의사 숫자 증가 때문이 아니라 한국의 근본적인 의료 시스템에 있다고 지적한 점이다.
저자들은 한국 의료의 근본적인 문제로 먼저 극단적으로 낮은 수가 보상시스템을 들었다. 이들은 기고문에서 “한국인은 1차 진료 의사를 만날 때 1.8파운드만 내면 되고(정부에서는 6.7파운드를 병원에 지급), 응급실에서 기관 삽관을 하는 고난도의 처치를 받을 때도 6파운드만 부담한다(정부는 31파운드를 병원에 지급)”라며 “중환자 의학 진료에 대해 정부는 의료진이 사용한 자원의 약 60%밖에 지급하지 않는다”라고 설명하면서 이런 극단적인 저수가 정책 때문에 한국의 여러 병원은 심각한 재정난을 겪고 있고, 이 때문에 병원은 필수적 의료와 중증 의료를 포기하게 된다고 전했다.
두 번째 문제는 의사들이 짊어지는 법적인 위험을 꼽았다. 저자들은 “한국의 의사들은 일본의 15배, 영국보다 566배나 높은 확률로 형사고발을 당한다”라며 “이는 법조인과 국민들이 의료의 생물학적 불확실성에 대한 이해가 없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이들은 2020년 대학병원 신생아중환자실 사망사건으로 의사와 간호사가 구속수감 당한 사례를 들며 “이런 무분별한 형사고발이 이어지면서 젊은 의사들은 위험도가 높은 전공을 선택하지 않게 되었다”라고 밝혔다.
또 “사직 전공의에게 대한민국 정부는 행정적, 법적제재를 가해 면허를 정지시키겠다는 협박을 하고 있다”라며 “정부는 의사들이 사직할 법적 권리가 없으며, 헌법으로 보장된 직업 선택의 권리 또한 제한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라고 설명했다.
저자들은 “현재 한국의 젊은 의사들이 사직하고 정부에 반기를 들게 된 데는 이 같은 의료보상 시스템의 문제와 의사의 안전이 보호되지 못하는 문제가 크다”라며 “다른 국가의 모범이 되었던, 효율적이고 환자 친화적이던 한국의 의료 시스템은 이 문제들을 극복하지 못하는 이상 소멸할 것”이라고 진단했다.